정부는 정규직 중심의 일자리 창출에서 시간제 근로자 등 비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를 정규직과 비슷하도록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방향으로 고용정책의 틀을 바꿔나가기로 했다. 시간제 근로자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시간당 임금과 처우를 보장해 실업난에 대처해온 네덜란드의 모델을 본뜬 것으로 이명박 정부 고용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으로 받아들여진다.
2일 취임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일자리를 늘려나가는 ‘네덜란드식 모델’을 고용 창출의 해법으로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달 ‘시간제근로자 고용촉진법’(가칭)을 입법예고한 뒤 9월 정기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박 장관은 이날 취임식 이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규직과 관련해 넘치는 혜택은 자르고 비정규직의 부족한 혜택은 채우도록 하겠다”며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전날 밤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도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시간제 근로자의 비율이 상당히 낮은데 (시간제 근로자의) 지위를 높임으로써 고용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전일제 근로자보다 시간제 근로자들이 임금도 낮고 처우 및 복지혜택이 열악한 것이 문제”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을 현재 고용노동부가 중심이 되어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네덜란드 모델을 따르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급격한 고용정책 변화는 이명박 정부 들어 대기업에 의존해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이 ‘고용 없는 성장’만 불러올 뿐 한계에 봉착했다는 인식 때문이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사회갈등 요인으로 자리 잡아 동반성장을 해치고 있다는 우려도 자리 잡고 있다.
▼ ‘고용없는 성장’ 해소할 학계제안 수용 ▼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학계에서 꾸준히 제안해 온 것을 신임 박재완 경제 사령탑이 실행에 옮기려 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 변화”라며 “대부분의 노동제도가 노조가 있는 대기업의 정규직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는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학계가 벤치마킹해온 네덜란드는 1981년 실업률이 11%에까지 달했으나 시간제 근로자에 대한 처우를 정규직과 비슷하게 적용하면서 1983∼1996년 약 80만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률을 크게 낮췄다. 시간제 일자리는 정규직보다 근로시간만 짧을 뿐 임금과 사회보장제도 혜택은 동등하게 유지해주면서 성공적으로 안착됐다.
반면 한국에서는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일자리를 희망하는 고학력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지만 시간제 근로자는 ‘질 낮은 일자리’라는 인식 때문에 취업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실제 한국의 시간제 근로자 비중은 2009년 말 기준 12.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4.5%의 절반 수준이며 60%인 네덜란드보다는 턱없이 낮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시간제 근로자들이 시간당 임금과 근속 혜택이나 4대 보험 적용 등에서 정규직과 차별을 두지 않도록 보호규정을 담은 시간제 근로자 고용촉진법을 만들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업이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조항도 담길 것”이라며 “시간제 일자리를 ‘번듯한 일자리’로 만드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